咸陽 吳 氏 崇慕 行事

咸陽吳氏 九世 諱 洪壽 史實

중헌[重軒] 2024. 9. 3. 09:15
咸陽吳氏 9世 諱 洪壽 史實 (生,卒 未詳)
중헌 (태 섭)추천 0조회      24.08.31 10:18댓글 0
 
함양오씨 시조 휘 光輝(광휘)는 고려 명종조에서 문과장원으로  尙書省 左僕射를
蒙古東眞聯合軍 討平之錄
勳一等으로 賜推 忠靖亂 匡國功臣(상서성 좌복야 몽고
동진연합군 토평지록훈1등 사추 충정란 광국공신)
삼중대광 금자광록대부 에
함양부원군으로 封하고 諡號(시호)  文度 를 除授하다 ,


휘 홍수의 증조부 휘 尙德은 號가 杜菴이요 고려조에서 봉선대부 소부시소감의
벼슬을 하였고 태조가
출사를 청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아 절의의 선비로 추앙을
받는다 ,  공의 조부 휘 致行은 조선 세종조에
출사하여 통훈대부 예조좌랑을 
세조 1년 (1455년)原宗功臣에 녹훈되고  부친 휘 凝 은 호를 錦南齋 세종

정묘년에 生員筮仕하여 직장동정 과 世祖 정축에 문과별시 魁元으로 급제 하여
성균관 직강으로 입시하다
가선대부 전라도 관찰사 를  예문관대제학 좌리공신
남원군을 받엇다 ,



휘 洪壽(홍수)는 成宗朝(성종조)에 蔭仕(음사)로 벼슬에 나아가서 秉節校尉
(병절교위)에 東國司直(동궁사직)
(정五품)  通訓大夫(통훈대부)(정3품당하관)
司憲府監察(사헌부감찰) 通政大夫( 통정대부)(정3품당상관)
吏曺參議(이조참의)
(종2품)에 이때에 正憲大夫(정헌대부)(정2품)의 품계에 승급되었으나 연산군정란
으로
질병을 핑계하고 조정에 나아가지 않었다 ,

配 貞夫人 密陽朴氏  父 牧使 輝  有  二男一女 
配 貞夫人 晉州蘇氏  父 參奉 新起  有 一男     ( 族譜의 記錄 을 참고)
  
그러나 公의 16세 후손 泰燮이 評價하는봐 정헌대부는 정2품의 당상관인데
조선왕조실록이나 어떤
史料에도 휘 홍수 선조를 찾을수없어  配 貞夫人 密陽朴氏
父 牧使 輝 의 짧은 기록을 추적하여 기록해 본다 ,


정부인 함양 박씨의 부친 박 휘 는 安州목사(평안도)로 홍수공의 丈人이다 ,

안주목사 박 휘의 아들 朴永昌은 파주목사 靖國功臣으로 연산군때 監察 김포현령
등을 지냈다 ,
中宗反正(1506년)때 반정주동자의 한사람이던 동생 朴永文의 권유에
따라 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에
녹훈이 되고 天嶺君(함양군)에 책봉되었으며
관직이 파주목사가 되엇다 ,

그러나 중종 8년 (1513년) 동생 박영문이 逆謀에 관련되어 죽임을 당하자 勳績이
삭제되고 유배되었다 ,
1522년 아들의 호소로 유배에서 풀려났으며 왕이
공신녹권까지 환급하고자 했으나 대간의 반대로 훈작은
회복되지 못했다 ,


後孫의 論旨로는 위와 같은 과거를 볼때 정부인 함양박씨의 남동생인 박영문의
역모에 연좌되어서 질병을
핑계로 관직을 버리지 않엇나 史料되는 바이다 .,
諱 洪壽 公의 墓所는 남원시 王之田 廣石村后 子坐 合兆 禮奬 有碑 ---



                         
                         2024년 甲辰  孟夏之節   글쓴이  戶參公派  12世 孫  泰燮 (重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