咸陽 吳 氏 崇慕 行事

함양오씨 7세조 휘 치행 묘역 안내문

중헌[重軒] 2024. 6. 23. 16:13

       안  내  문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노암동 산 9번지 

 

이곳은 함양오씨 휘 致行(치행) 號(호)는 花山居士(화산거사)의 묘소이며 

始祖(시조) 휘 光輝(광휘) 고려 삼중대광 금자광록대부 咸陽府院君(함양부원군)의

7세손 치행의 墓域(묘역)이다 ,

 

고려 禑王(우왕) 11년 을축년 1385년 함양군 花藏山(화장산)아래 杜菴公 尙德

(두암공상덕)의 둘째 아들로  태여났는데 두암공 상덕은 고려 소부시소감으로

고려가 망하니 개성 두문동 72현과 함께 은거하여 세상을 하직하였다,

 

화산거사 致行은 성품이 剛毅(강의)하고 大節(대절)이 많아 이때에 여러 사람들로

부터 추앙을 받었다 ,이곳 함양오씨 휘 치행 묘갈명(咸陽吳氏諱致行墓碣銘)에는

有明朝鮮 贈 正憲大夫 吏曹判書(유명조선 증 정헌대부 이조판서) 行 通訓大夫

刑曹正郞(통훈대부 형조정랑) 吳公 致行之墓(오공치행지묘)를 기록한 비석이

있으니 치행의 현손 경(玄孫 瓊 )이 嘉靖四十五年 丙寅三月淸明(가정45년병인년 

3월청명 명종25년 (1566년)에 玄孫 行 內資寺奉事 瓊 刻 (현손 행 내자시봉사 경 각) 

하여 세우다 하는 표석이다 , 

 

公은 외삼촌 익성공 黃喜의 천거로 세종조 의 조정에 출사하였다 ,

세종16년 2월 1434년 長水縣監 吳 致行 (장수현감 오치행)등이 辭朝하니 세조께서

인견하고 말하기를 農桑을 권장하고 형벌을 삼가하며 飢民(기민)을 구제하여

백성을 사랑하고기르는 도리를 다하라 하였다 ,

 

세조 1년 12월 1455년 의정부에 전지하여 主簿 吳致行(주부 오치행)을 원종공신

(原從功臣)에 녹훈 하였다 ,階 通訓大夫 禮曹佐郞 守 刑曹正郞(계 통훈대부 예조좌랑

형조정랑)의 품계에 이르러서 세조 3년 정축년 1457년 영월에서 端宗(단종)이

돌아가시니 公은 즉일로 벼슬을 버리고 天嶺(천령) 고향으로 돌아갔다 ,

追慕六臣之淸節 因築一壇於所居 晨夕登壇 北向寧越  瞻望以哭 以終三年

(거처하는곳에 단종의 능을 모시고 사육신의 청절을 추모하였다 집에 하나의 단을

쌓고 새벽과저녁으로 단에 올라가 영월을향해 바라보며 곡하기를 3년을 하였다 ,)

 

세조 5년 기묘 1459년에 돌아가시니 세조께서 朝傳(조전)에 命諭(명유)하여 증 정헌

대부 이조판서를 제수하고 禮官을 보내서 龍城 지금의 남원시 주촌방 술산 간좌에

禮葬하였다 , 함양오씨의 현존하는 묘역중 가장 오랜 역사를 빛낸 곳으로 사료된다 , 

 

                                                    함양오씨  호참공파 종종친회 회장 (重軒) 태섭  撰